'천년의 사치품' 당와를 아시나요? (daum.net)
고품질 녹색 유리기와.. 색깔 오묘
귀족 집단장때 지붕 마감재로 인기, 통일신라부터 조선까지 특별규제
[동아일보]
오늘날 고급 모피나 유명 브랜드 가방, 고가의 보석류 같은 사치품은 사치세의 일종인 '개별소비세'를 물어야 한다. 예전에도 이렇게 국가가 특별 관리한 사치품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1000년 가까이 사치품으로 특별 규제했던 물품이 있었으니 바로 '당와(唐瓦)', 즉 당나라 양식의 기와다.
이동주 경북대 외래교수(사학)는 연세대 국학연구원의 학술지 동방학지 최신호에 실린 '삼국사기 옥사조(屋舍條)에 보이는 당와의 실체'란 논문에서 이 '천년 사치품'에 얽힌 역사를 소개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이 즉위 9년인 834년 신분에 따라 사용을 금지하는 사치품의 목록을 규정하는데, 평민은 물론이고 진골 귀족까지 공통으로 사용을 금지한 품목이 바로 당와였다.
당와는 중국 당대의 기와를 본떠 만든 녹색의 고품질 유리와(琉璃瓦)를 말한다. 녹유와(綠釉瓦)라고도 한다. 가마에서 한 번만 구우면 되는 일반 기와와 달리 도자기를 만들 때처럼 초벌구이한 기와에 유약을 발라 비교적 낮은 온도(900도)로 재벌구이를 하기에 오묘한 초록빛을 띠지만 유리처럼 쉽게 깨진다.
당시 진골 귀족에게도 사용을 금했던 당와는 왕궁이나 왕실 사찰의 지붕 마감에 주로 쓰였다. 경북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때만 해도 지붕 전체가 아닌 처마의 끝(막새)을 마감할 때만 이 당와를 사용한 걸로 보인다. 이 교수는 "출토 유물을 볼 때 나라에선 금했지만 일부 귀족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집 단장에 당와를 사용했을 것"이라며 "지붕에 얹었을 때 눈에 보이는 겉면에만 유약을 발라 가공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들어 당와는 청와(靑瓦), 황와(黃瓦), 청황와(靑黃瓦)처럼 다양한 빛깔로 제작돼 궁궐 지붕 마감용으로 쓰였다. 이때엔 처마 마감용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지붕 전체를 덮는 형태로 생산됐고 눈에 띄지 않는 안쪽 면에도 유약을 발랐다.
하지만 당와는 여전히 사치품이었다. 조선왕조실록 효종 4년(1653년) 기록에는 화재로 불탄 궁궐 후원 별당을 수리하면서 당와를 쓰기로 한 것을 두고 재상 이경석이 "전하께서 (백성에게) 사치를 금하라 했으니 궁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간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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