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김상현 교수는 통합적·실증적 연구로 한국불교사 정립”

심맥부지 2023. 12. 17. 17:03

정병삼 명예교수, 7월14일 김상현 교수 학문관·성과 분석
“역사·불교 독립체 아닌 연결체…연기적 불교역사관 확립”

“고(故) 김상현 교수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분석해 다방면에 걸쳐 한국불교사를 다채롭게 조명하고 정리했다. 특히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치열하게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았고 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시종일관 철저한 자세로 한국불교사를 정립했다.”

정병삼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동국대 동국역사문화연구소가 7월14일 동국대 만해관에서 개최한 고 김상현 동국대 교수 10주기 추모 학술대회에서 김 교수의 연구 성과를 분석하고 그의 역사관과 불교 연구의 의의를 구명했다.

정병삼 명예교수는 ‘김상현의 한국불교사 연구와 학문 세계’ 제하의 기조 발표를 통해 “고 김상현 교수는 36년간 130여편의 학술논문과 9편의 저서 및 16편의 공저에서 고대불교부터 근대불교에 이르는 긴 시간과 불교사상·불교문화·한국사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며 “특히 기존에 역사와 불교를 따로 연구하던 당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역사와 불교를 상호 유기적인 연결체로 보고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한국문화의 틀이 이뤄지고 발전했음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정 명예교수에 따르면 김 교수는 고대부터 근현대 불교사에 이르기까지 큰 연구 성과를 남겼다. 특히 ‘신라 중대 전제왕권과 화엄종’ 논문에서 당시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로 대변되는 의상(625~702) 스님의 화엄사상이 신라의 중앙집권적 전제왕권 수립을 뒷받침했다는 당시 학계의 주장을 전면 비판했다. 김 교수는 화엄사상이 ‘모든 것은 유기적 관계에 의해 존재한다’는 연기의 본질을 밝힌 것으로, 조화와 평등을 강조하는 이론이 될 수 있지만 전제왕권을 옹호하는 이론이 되지 못함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교수 주장 이후 화엄사상이 전제왕권의 사상적 배경이 되지 못한다는 관점이 학계의 주류로 폭넓게 자리 잡았다.

정병삼 숙명여대 명예교수.

고 김상현 교수는 면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한 불교연구의 대가이기도 했다. 단순히 인식론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이 아닌, 실제 연구자료에 기반한 실증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당나라 고승 법장(643~712) 스님의 저술로 알려진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이 신라 의상 스님의 제자 지통 스님의 ‘추동기(錐洞記)’임을 입증했다. 이 성과는 신라불교사상사 연구에서 자료의 엄밀한 검토로 새로운 자료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또 원효(617~686) 스님의 생애와 행적을 규명하고자 비문(碑文) 및 의상·자장·의천 스님에 대한 기록을 일일이 재검토하는 치밀함과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로써 원효의 생애와 사상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는 김 교수의 연구 태도가 확실한 사료에 근거한 명징(明徵)한 논리 전개를 지향함을 보여준다.

정 명예교수는 김 교수가 불교의 역사관을 연기론(緣起論)에 따라 파악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역사란 수많은 인연이 얽히고설키면서 전개되는 사건들이므로, 어떤 역사 사건도 단순히 한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되지 못하고 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할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반성과 전환’을 역설했다. 일상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에 맞서 그 흐름을 돌리고 새로운 역사의 물꼬를 트기 위해 과거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참회의 필요성을 부각했던 것이다.

정 명예교수는 “김 교수는 불교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연구자였다”며 “김 교수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자각(自覺)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계승 발전시키고 부끄러운 역사는 반성의 실마리로 삼아야 한다는 등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홍석 동국역사문화연구소장.

한편 ‘만당 김상현 교수의 학문 세계와 그 계승’을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후학 양성에 힘쓴 김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기억하고, 제자들의 연구성과를 발표하고자 마련됐다. 학술대회를 주최한 양홍석 동국역사문화연구소장은 개회사에서 “고 김상현 교수는 화엄·원효·삼국유사·사찰 등 고대불교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 불교를 비롯한 고려·조선·근대불교 등 다방면에 걸쳐 한국불교 역사연구 수준을 심화하고 지평을 넓힌 뛰어난 연구자”라며 “김 교수 10주기를 추모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그 연구업적과 학은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노대환 동국대 문과대학장.

노대환 동국대 문과대학장도 축사에서 고 김상현 교수와의 개인적인 일화를 언급했다. 그는 “김 교수님의 학문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학생시절 담배와 관련된 당신의 연애 이야기도 유머러스하게 들려주시는 등 인간적인 면도 기억이 남는다”며 “조선후기 학자 이용휴는 당대 천재 시인인 이언진이 죽자 ‘그가 떠난 후 세상 사람 숫자가 줄어든 느낌’이라고 했다. 김 교수님의 부고를 들었을 때 저 문구가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쳤다”며 좌중들이 선현(先賢)의 향훈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제자들과 유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학술대회에서는 △‘경주 황룡사지 하층 유구의 성격 재검토’(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고기(古記)의 사서적 성격 재론’(이승호/ 동국대 문화학술원 교수) △‘신라 정중(淨衆) 무상(無相)과 대성자사(大聖慈寺)의 창건’(곽뢰/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문연구원) △‘조선 명종대 승정체제의 복구와 운영’(손성필/ 조선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한국근대 불교교육 담론과 불교전문학교의 설립’(김성연/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등 5개 발표가 진행됐다.

토론자로 이동주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 엄기표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 박광연 동국대WISE캠퍼스 국사학과 교수, 김용태 동국대 불교학술원 부소장, 이경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각각 나섰다. 대회 마지막에는 최연식 동국대 사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종합토론이 펼쳐졌다.

박건태 기자 pureway@beopbo.com

[1690호 / 2023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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